첫 제품은 왜 자꾸 커지는가
첫 제품을 준비할 때, 처음에는 필요한 것이 몇 개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화면을 그리고 기능을 적기 시작하면 목록은 빠르게 늘어납니다.
회원가입이 있어야 하고, 알림도 필요하고, 데이터를 보여줄 화면도 있어야 합니다. 사용자마다 상황이 다르니 설정 기능도 넣어야 할 것 같고, 나중을 생각하면 관리자 화면도 미리 만들어두는 게 안전해 보입니다.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이게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순간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방금 떠올린 기능들 대부분은 고객이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고객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목록은 이미 길어지고 있습니다.
기능이 늘어나는 이유는 고객의 필요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불안이 크기 때문입니다.
너무 단순하면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완성도가 낮아 보이지 않을까. 첫인상이 나쁘면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기능이 하나씩 붙습니다.
그래서 첫 제품에는 두 종류의 기능이 섞입니다. 하나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미완성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기능입니다. 앞의 것은 고객을 위한 것이고, 뒤의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둘이 겉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두려움에서 나온 기능도 “고객이 필요로 할 것”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을 덮기 위해 만든 기능을 고객을 위한 기능이라고 믿게 됩니다.
첫 제품은 작게 만들라는 말은 누구나 압니다.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미루라는 조언도 익숙합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잘 못 합니다.
기능을 뺀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능을 하나로 줄인다는 것은 “이 하나로 승부한다”고 선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선언은 물러설 곳을 없애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능이 많으면 실패해도 빠져나갈 구실이 있습니다. 반응이 없으면 “그 기능이 부족했나 보다”, “이것도 넣었어야 했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능을 하나로 줄이면, 반응이 없다는 것은 곧 그 가정이 틀렸다는 뜻이 됩니다. 더 이상 기능 탓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제품을 자꾸 키우는 진짜 이유는 게을러서도, 방법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확인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능은 실패를 뒤로 미뤄줍니다. 적은 기능은 실패를 곧바로 마주하게 합니다. 기능을 못 빼는 것은, 사실은 자기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아직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 제품을 작게 만드는 일은 기능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확인을 미루지 않기로 하는 결정에 가깝습니다.
이 결정을 내리고 나면 무엇을 넣고 뺄지는 오히려 단순해집니다. 판단의 기준이 기능의 완성도가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지만, 틀리면 이 사업을 계속할 이유가 사라지는 가정은 무엇인가.
이 가정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기능은 넣고, 확인된 뒤에 만들어도 되는 것은 뺍니다. 고객이 핵심 가치를 경험하는 데 꼭 필요한 것,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 그리고 고객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 이 세 가지면 첫 제품은 제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직접 대신할 수 있는 자동화, 아직 한 명만 요청한 예외 기능, 아직 오지 않은 대규모 사용자를 위한 구조는 뒤로 미뤄도 됩니다. 이것들은 대개 고객이 아니라 우리의 불안이 요구하는 것들입니다.
성공의 기준도 미리 정해두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좋게 해석하게 됩니다. “반응이 좋았다”, “사람들이 흥미로워했다”는 말은 확인을 또 한 번 미루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고객이 실제로 사용했는지, 기존 방식을 바꿨는지, 다시 찾았는지, 돈을 냈는지처럼 비용이 따르는 행동이 더 정직한 증거입니다.
결국 첫 제품을 작게 만드는 일의 어려움은 기능을 덜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덜어내고 나면 남는 하나의 질문을 지금 마주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첫 제품은 미래에 완성할 제품을 작게 줄인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가장 확인하기 두려운 것을 더 미루지 않고 묻는 일입니다.
Commen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