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가르침을 버린 자의 가르침
평소 경영/자기계발 책만 즐겨 읽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집어 들었다.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소개를 보고.
싯다르타는 모든 스승을 떠난다. 아버지를, 고행자를, 심지어 붓다까지. 처음 읽을 때는 오만하게 느껴졌다. 깨달은 자가 눈앞에 있는데 고개를 돌리다니.
그런데 이 장면을 경영에 놓으면 다르게 읽힌다. 창업자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듣기 좋은 조언을 만났을 때다. 투자자의 틀, 선배들의 공식, 베스트셀러의 방법론. 이는 그럴듯해서 자신이 직접 부딪혀볼 필요를 없앤다. 싯다르타가 붓다를 떠난 건 가르침이 틀려서가 아니다. 남의 답으로는 자기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책에서 발췌한 조직 설계를 그대로 가져다 쓴 적이 있다. 석 달 만에 무너졌다. 틀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 틀이 풀려고 한 문제가 우리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세속에서의 시간이다. 싯다르타는 상인이 되어 돈을 벌고, 쾌락에 빠지고, 자기혐오까지 겪는다. 보통의 서사라면 잘못된 길로 치부할 시간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시간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고 말한다. 그 시간을 실패로 지워버리면 거기 숨어 있는 보석을 놓치게 된다. 회사도 다르지 않다. 내가 가장 많이 배운 건 유니콘이 될 때가 아니라 회사를 나온 뒤였다.
싯다르타가 도달한 곳은 강가의 고요함이었다. 뱃사공 바수데바 옆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 것. 바수데바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듣는다. 대부분의 대표는 답을 모르는 게 아니다. 자기 안의 답을 마주하기가 두려울 뿐이다. 좋은 조언자는 그걸 안다. 그래서 말하지 않고 듣는다.
싯다르타는 강물에서 모든 것이 동시에 흐른다는 걸 깨닫는다. 시작과 끝, 기쁨과 고통이 나뉘지 않는다. 회사도 그렇다. 성장과 위기, 채용과 이탈이 따로 오지 않는다. 동시에 온다. 하나만 보는 대표는 늘 절반만 판단한다. 누군가의 성공만을 쫓는 순간, 자기 회사의 진짜 문제는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건 삶을 대하는 태도다.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 것. 지금 겪는 일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누군가의 정답을 빌리지 않는 것. 싯다르타는 수십 년을 떠돈 끝에 강가에 앉았다. 그리고 비로소 자기 삶 전부를 받아들였다. 빛나던 시간도, 부끄러운 시간도, 전부. 경영서 백권이 못 해준 말을 이 소설 한권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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